자신의 모습을 직접 카메라에 담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자신의 모습을 직접 촬영한 사진을 일컫는 셀피(Selfie)1)는 한 시대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탄생한 이 문화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 SNS)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풍조를 반영하여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는 2013년 셀피(Selfie)를 올해의 단어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인들은 명소 혹은 휴양지와 더불어 대중교통이나 집과 같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셀피를 즐겨 찍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욕구는 카메라가 있기 이전부터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발현됐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에도 귀족이나 왕은 자신들의 모습을 담고 남기기 위해, 화가에게 초상화를 의뢰했고,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화가들 역시 본인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고 남기고자 했을까요? 이번 미술이야기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기록했던 자화상들의 등장배경을 알아봄으로써, 오늘날 현대적인 의미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셀피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는 풍조가 어떠한 문화 예술적 뿌리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화상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전반에 걸쳐 르네상스의 탄생과 함께 서양에 나타난 인본주의(혹은 인문주의) 정신은 ‘인간이 모든 사물의 중심이자 척도’임을 강조하는 인간 중심적 사상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 사상은 예술의 표현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화가가 자신을 직접 탐구하고 그리는 자화상이 발달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초기 자화상은 종교화나 역사화 등을 제작하는 전문 화가의 서명 혹은 증인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화가는 자신의 모습을 넓은 화면 한구석에 작게 그려 넣곤 했습니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과 그 일부 Jan Van Eyck, <The Arnolfini Portrait>, 1434
그 대표적인 예로 1434년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가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The Arnolfini Portrait)>을 들 수 있습니다. 상류층 부부의 결혼 서약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유화를 사용한 최초의 2인 전신 초상화로 미술사적인 의의가 깊습니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부부의 뒷편에 걸린 거울에는 4명의 사람이 비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거울 확대본을 보면 푸른 옷을 입은 얀 반 에이크와 붉은 옷을 입은 그의 조수, 그리고 부부의 뒷모습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결혼 서약을 위해 2명의 증인이 있어야 했기에, 이 작품은 결혼증명을 위한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샹들리에와 거울 사이에는 “얀 반 에이크 이곳에 있었다. 1434년(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라는 서명과도 같은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화가인 에이크의 역할이 이 결혼의 증인인 동시에 서술자라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Leon Battista Alberti, <Self-Portrait>, 1435
여러 인물 속 자신의 모습을 담은 얀 반 에이크의 작품과는 다르게 단독으로 자신의 모습을 담은 최초의 자화상은 이탈리아의 작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2)(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의 작품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한 명사의 저택에 그의 자화상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현존하지 않고 그의 옆모습을 청동으로 만든 메달 형식의 부조상만이 남아있습니다.
Albrecht Dürer, <Self-Portrait at 13 Years Old>, 1484
한편, 후대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현존하는 최초의 자화상 작품은 1484년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13세에 그린 자화상(Self-Portrait at 13 Years Old, 1484)>입니다. 그 이유는 이전의 자화상은 단순한 모방에 그쳤다면, 뒤러의 자화상에는 화가의 자의식이 처음으로 분명히 표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뒤러는 자신의 모습을 대상으로 표정을 연구하고 미와 조화의 법칙에 대한 시범을 보였으며, 내면의 심리를 투영시켰습니다. 이로써 그는 자화상을 독자적 장르로 확립한 ‘자화상의 아버지’로서 미술사적 업적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자화상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달하여, 오늘날 디지털 문화를 반영하는 셀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자화상은 왜 그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많은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 것일까요? 자화상의 배경에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주요한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Albrecht Dürer, <Self-Portrait with Fur-Trimmed Robe>, 1500
첫째, 작가로서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해 자화상을 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앞서 언급한 알브레히트 뒤러가 있습니다.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로도 불리는 뒤러는 당시의 독일 미술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그는 화가의 사회적 지위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다수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 가운데서도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은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Self-Portrait with Fur-Trimmed Robe)>입니다. 화려한 모피 코트를 차려입은 화가는 정면을 응시한 채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뒤러가 활동하던 당시에 정면을 응시한 자세는 오로지 그리스도나 왕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왕족이나 귀족만이 입을 법한 모피 코트를 화가가 걸치고 있는 모습 역시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신의 모습에 투영하여 그린 자화상 배경에는 “뉘른베르크 출신의 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살의 나를 내가 지닌 색깔 그대로 그렸다. (Albert Dürer of Nuremberg, I so depicted myself with colors, at the age of 28.)”라는 글이 적혀있습니다.신의 모습을 투영한 자화상에 이러한 문구를 삽입한 것은 뒤러가 화가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한껏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두 점 (각각 1634, 1665년 작) (좌) Rembrandt, <Self-Portrait as a Young Man>, 1634 / (우) <Rembrandt Laughing>, 1665
둘째, 자화상은 자신의 일대기를 성찰하고 기록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빛의 화가로 잘 알려진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자화상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렘브란트는 역사화, 풍경화 외에도 자아 성찰적인 성격의 자화상을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 100여점 가량을 그렸습니다. 렘브란트 이전에는 화가가 자신을 시기별로 그린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에 그의 자화상은 ‘그림으로 쓴 자서전’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림을 시기별로 따라가 보면 그의 일대기가 드러납니다. 젊은 시절 경제적 풍족함과 명성을 누렸던 그는 자화상에서도 금으로 된 장신구나 과도하게 고급스러운 의상 등을 통해 자신을 과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풍족했던 그의 인생은 부모와 자식, 그리고 아내의 죽음을 겪으면서 파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후 그려진 노년의 자화상을 보면, 젊은 시절의 자신만만함은 없어지고, 자조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렘브란트가 자신의 생애를 성찰하고 기록하는 수단으로 자화상을 그렸기 때문에 남겨진 자화상을 통해 그의 일대기와 자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Frida Kahlo, <The Wounded Deer>, 1946
셋째, 삶의 중요한 순간이나 격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자화상을 그리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를 들 수 있습니다. 칼로는 10대 시절에 겪은 치명적 사고로 인한 신체적 장애를 얻게되었을 뿐 아니라, 21살 연상의 천재 화가로 불리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와의 결혼 후 연이은 외도로 인한 이혼에 유산까지 끊임없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 칼로는 내면의 모습을 상징적인 방식으로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위의 <상처 입은 사슴(The Wounded Deer, 1946)>이란 작품은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자화상 중 하나입니다. 작품 속에서 칼로는 사슴의 형상을 통해 상처받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울창하고 빽빽하게 들어선 숲의 나무들과 사슴을 압박하고 포위하여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은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삶의 아픔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칼로는 삶에서 겪은 아픔을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 법한 초현실적인 표현방식을 통한 상징적 자화상으로 담아냈습니다.
반 고흐의 자화상 좌) Vincent van Gogh, <Portrait de l'artiste sans barbe>, 1889 우) Van Gogh,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1889
넷째, 모델을 구하기 어려웠던 화가들은 인물화를 그리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담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물화 습작에 있어서 중요한 피사체인 모델을 경제적, 혹은 물리적 이유로 구하기 어려웠던 화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모델로 삼아 자화상을 그렸던 것입니다. 실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1889년 9월)에서 “난 모델을 구할 수 없으니, 나 자신의 모습을 그리려고 거울을 샀다. (I purposely bought a mirror good enough to enable me to work from my image in default of a model.)”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위 작품은 반 고흐가 직접 거울을 사고 난 후 그린 자화상입니다. 죽기 직전 어머니 생일 선물로 그린 이 작품은 그가 남긴 40여 점의 자화상 중 유일하게 수염이 그려져 있지 않은 그림입니다. 고흐는 거울을 캔버스의 위쪽에 두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렸는데, 때문에 작품 속에 보이는 그의 왼쪽 얼굴은 실제로는 오른쪽 얼굴입니다.
화가들은 이 외에도 자신만의 화풍과 개성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자신을 광고하기 위한 목적 등 다양한 이유로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사진의 발달과 디지털카메라의 개발로 인해 사람들은 적은 비용으로 자신을 직접 담을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더 이상 화가를 고용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오늘날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셀피를 찍는 현대인의 심리도 자화상을 그렸던 화가들의 의도와 많은 부분 그 맥락을 같이합니다. 우리는 때로 평소보다 ‘멋진’ 모습을 과시하거나 사진에 효과를 가미해 자신의 모습을 미화하는가 하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기념하거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셀피를 찍기도 합니다. 어떤 사진작가들은 일정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살펴보았을 때 비록 기술과 표현의 양태는 다르지만, 과거 자화상을 그렸던 화가들과 셀피를 찍는 현대인들의 기저에는 서로 일맥상통하는 자세와 심리가 전제되어 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Cindy Sherman, <Bus Riders>, 1976
지금까지 근대까지의 자화상의 시작과 발달을 대표적인 예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에서 자화상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현대 이전의 자화상이 평면회화에 국한되었던 것에 반해 현대미술에서는 자화상의 제작방식이나 재료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은 자기 스스로가 작품의 모델이 되는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 기법, 즉 셀피3)를 작업에 활용합니다. 셔먼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의 모습으로 분장한 자화상 시리즈로 사진 속에 등장하는 자신을 각자 다른 성별, 나이, 문화의 사람으로 나타냄으로써 당시 미국에서 억압된 여성의 권리에 문제의식을 제기했습니다.
Saint Orlan, <Self-Hybridizations>, 2007
다양하고 이질적인 방식으로 자화상을 표현하는 또 다른 현대 미술가로는 생트 오를랑(Saint Orlan, 1947~)이 있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재료(캔버스)로 삼아 성형수술을 통해 계속하여 변화하는 자화상을 만드는 오를랑은 각종 ‘이물질’을 인공적으로 삽입하거나 이식하여 얼굴을 재구성합니다. 성형한 모습의 자화상을 통해 남성들의 시각으로 규정된 여성의 미에 맞서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현대미술에서는 자화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포함된 사회로 확장하여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자화상을 작업하는 작가들도 많습니다.
안다빈 작가는 사물을 인식하는 관점에 영향을 주는 빛의 효과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작업합니다. 얼핏 보면 렘브란트의 자화상처럼 어두운 공간에서 빛을 연구한 것 같지만, 정면이나 측면이 아닌 뒷모습을 그려내는 파격적인 구도를 구현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기술의 발달로 자신의 모습을 쉽게 사진에 담아내는 오늘날의 풍조와는 대조적으로, 자화상을 유화로 그리되 사진처럼 매끈하게 구현한 점 역시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종기 작가는 동양적 풍경 안에서 유유자적하는 서양 캐릭터를 조화하여 서구화된 우리의 모습을 담아내는 작업을 합니다. 작가는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캐릭터와 우리나라의 명소 혹은 전통적 도상을 결합해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정신적, 문화적으로는 옛 전통의 맥락 안에 있지만, 겉모습은 서구화된 우리의 모습을 표상하는 듯합니다. <자화상 2>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자화상에도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캐릭터와 자화상이라는 전통적 도상을 결합합니다. 과거와 현재, 서구와 동양이 혼재된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시각으로 자화상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오늘날 유행하는 셀피 문화에 내재된 자신의 모습을 이미지로 기록하는 양상이 어떤 뿌리를 지니고 있는지를 자화상이라는 장르가 발달하게 된 배경과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나아가, 셀피를 활용한 현대미술과 전통적인 의미의 자화상을 이어가는 현대 작가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현대인의 셀피와 미술에서의 자화상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하는 공통된 목적에서 시작되었지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미술계에서는 최근 셀피와 자화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의문을 던지는 시도가 눈에 띕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영국의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에서는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셀피에서 자기표현까지’(From Selfie To Self-Expression)라는 제목으로 과거 거장들의 자화상에서부터 오늘날의 셀피를 전시했습니다. 이는 제도권 안의 자화상(Self-portrait)과 제도권 밖의 자화상(Selfie)을 비교하며 관람자가 어디까지 예술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자아냅니다. 한국에서는 사비나미술관에서 올리비아 무스(Olivia Muus, 덴마크 출신 큐레이터)의 ‘뮤지엄 셀피 프로젝트’ 전시를 통해 소위 ‘인증샷’으로 지칭되는 셀피를 현대미술의 차원에서 확장된 자화상으로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자화상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그림을 그린, 당시 붓을 들고 살아 숨 쉬고 있던 화가의 눈을 마주 보고 그 숨결과 만나는 곳입니다. 전통적 자화상이 화가가 살았던 당시의 문화를 반영하는 역사적 가치를 담고 있듯이 셀피 또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낳은 새로운 자화상입니다. 미술과는 관련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셀피를 접할 때 자화상의 미술사적 배경을 함께 떠올려 본다면 일상에서 더욱더 풍부하고 흥미로운 감상과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용어해설
1) 자가촬영사진(Self-portrait photography)의 준말 2)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의 건축가. 이론가, 인문주의자이기도 하며 수학, 법학, 신학에 저작도 많은 그는 르네상스 양식의 고전주의화 및 법칙화를 추진하여 르네상스 약식의 기초를 닦았다. 3) 이 글에서 주로 다뤄지는 카메라와 휴대폰으로 자신을 찍는 셀피(selfie) 역시 셀프 포트레이트의 준말이지만, 이 부분에서 사용된 셀피는 ‘Self’와 ‘Portrait’는 각 단어의 의미에 중점을 둔 파생어로 그 맥락을 달리한다.
참고문헌
우경주, 『자화상 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7 로라 커밍, 『화가의 얼굴, 자화상』, 김진실 옮김, 아트북스, 2012 김서진, 『자화상의 형성분석 연구』, 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3 천빈, 『자화상展』, 정유희 옮김. 어바웃어북. 2012 [인터파크도서 북DB]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다, 2012/09/06 윤신혜, 『미술사의 자화상을 통해 본 미디어아트의 자화상』,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7 빈센트 반 고흐, 『반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옮김. 예담. 2005 조선미, 『화가의 자화상』, 예경사, 1995 안희정, 『한국 근대 자화상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0